Yubin Oh


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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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WEB/INSTA)




무각형

보이는 것들을 지지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주할 때. 

Editor: Oh Yubin
Photography: Shin Kijun 
Art: Hwang Joye
Hair: Kim Hwan at NaTsu
Makeup: Baek Hyuna
Interview and Styling for Majeo Kim
<DAZED> KOREA, September 2024 Issue


<데이즈드> 독자를 위해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김마저입니다. ‘마저’라는 이름이 생소하다며 많이 여쭤보세요. 주격 조사는 주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뜻이 없지만, ‘마저’는 조사이면서 스스로 독립된 뜻을 가지고 있어요. 조사로 이름을 짓고 싶었던 저는 10년은 이 작가명으로 활동했고, 이후 10년은 개명을 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꽤 오랫동안 작가님 작업을 좋아해 왔어요. 제가 처음 본 작업은 회화였던 걸로 기 억해요.

서양화와 동양화를 복수전공했고, 졸업 후 회화 작업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가구 디자인을 하며 생긴 인연으로 건축가들에게 공간을 배우기 시작한 것 같아요. 건축가들이 설계한 구조 안에 가구를 채워 넣는 일을 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건축가 한 명 한 명이 제게 스승이 된 셈이죠. 공간을 해석하고 이해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도 보게 되었어요. 우리는 보통 공기 없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공기 이전에 공간이라고 봐요. 저에게 공간은 시작점이자 끝점 같은 거예요. 시작과 끝 사이에는 삶이 있고, 공간은 삶의 바탕 같은 거라서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건축가들과 협업하면서 공간을 인식한 것 같아요. 이런 살아 있는 교육은 미대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었어요. 높은 공간이 주는 에너지, 천장이 아주 낮은 공간에서 느끼는 압축적 느낌 모두 설레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조형 작업은 가구를 만드는 것이 바탕이 되어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조금 어려운 길을 걷는 것 같아 힘들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님의 회화와 조형 작업이 병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문득 2차원과 3차원 사이를 연결해 주는 2.5차원 같은 게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2.5차원, 너무 좋고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저에게도 사실 2.5차원이 있어요. 2와 3 사이의 0.5를 매우 즐기는 편이고, 아주 관심이 가는 차원이기도 하고요. 0.5 는 2에서 약간 더하거나 3에서 조금 뺀다는 느낌이에요. 2와 3 사이 혹은 그 겹침을 아주 매우 중요하게 바라봐요.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2.5로 상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작품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아요. 2라고 생각하는 것과 3이라고 생각한 것을 2.5 정도에 작품을 둡니다. 그러면 의아해하죠. 왜 3이 되지 못했을까? 혹은 2 맞아? 이렇게 말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 은 2.499999···에서 노는 것인데요, 자꾸 정의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거죠. 술래 잡기처럼요. 이 부분이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지점 같습니다. 사실 삶에서 보면 이 아슬아슬한 2.499999··· 때문에 매우 힘든 경우도 아주 많지만요. 


이제는 조형 작업을 넘어 퍼포먼스까지 하고 있는데, 이렇게 장르의 확장을 이루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우연히 몇 년 전 북청사자놀음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사자 탈춤과 곱추 춤을 보고 넋이 나갔습니다. 곱추 춤 전수자인 무형문화재 강선윤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제가 꼭 곱추 춤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께서는 몸을 너무 안 써본 사람이니 현대무용을 배우고 오라고 하셨어요. 정말 1년간 현대무용을 하고 선생님을 다시 찾아갔죠. 그 움직임 덕분에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움직임은 몸을 통해 공간으로 들어가 만나는 느낌이에요. 현대무용을 배우면서 내가 움직이는 하나하나의 몸짓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짧은 기간 수련했지만 직접 퍼포먼스를 해보게 되었죠. ‘한 번은 꼭 해보자’라는 결심이 이루어졌고, ‘또 할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보러 온 많은 관객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9월 개인전에 또 하게 되는 용기를 얻었어요. 작품을 통해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직접 관객과 몸으로 소통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유연함’, ‘유목적’, ‘유영’ 등 작가님의 작업 세계를 설명하는 데에는 유독 이런 단어가 많이 등장해요. 작가님이 생각하고 지향하는 유연함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유연함은 고정되지 않는 생각, 혹은 움직임에 있는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유독 틀을 싫어했어요. 반복적인 일을 하는 데 매우 답답함을 느끼고요. 부모님의 영향도 큰 것 같아요. 항상 넓은 울타리를 놓고 도전하도록 지켜봐 주셨거든요. 그 덕에 수많은 도전을 할 수 있었고, 아마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유연하지 못했으면 장애물도 두려워했을 것 같아요. 삶에서 무시무시한 장애물을 만날 때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힘이 생겼거든요. 장애물을 넘으면 어려움 뒤에 보상받는 보너스까지 볼 수 있었어요. 그 너머의 생각 혹은 부분을 전체로 생각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든 것 같아요. 역시 삶이란 어렵기도 하고 기만하면 안 되기도 해서요. 항상 겸허해져요. 반대로 삶에 지고 싶지 않은 승부욕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세상과 나를 지렛대로 견줘 보면 너무 나약하고 작거든요. 그래서 세상을 들어 올릴 수 있으려면 결국 나를 잘 설정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중 하나가 자신을 고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아마 유연함은 거기서 나오는 힘 아닐까요. 


작가로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유연함만큼이나 무언가를 확고하고 고집 있게 밀고 나가야 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건 참 어렵지만 중요한 것 같고요. 작가님의 균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요.

그 균형은 결국 자신만이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항상 ‘0’을 잘 유지하려고 하죠. 그런데 작업을 할 때는 높은 에너지가 앞서요. 너무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고, 재미있는 일은 자꾸 빠져들어 가거든요. 확고함 밑에는 나에게 무한한 신뢰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우선 자신을 어떤 테두리에도 넣지 않고, 가능성도 차단하지 않아요. 주로 작업만큼 중요시 생각하거나 즐기는 것이 ‘생각’ 같습니다. 저는 생각을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어느 때는 생각을 통제하기도 합니다. 그중 하나가 20대 중반부터 시작한 명상입니다. 명상은 생각과 생각을 끊어내서 사이 공간을 만드는 일이에요. 이렇게 생각이 없는 공간을 만들어내면 아주 좋은 생각도 일어납니다. 생각이 투명해지는 느낌이에요. 원하는 곳에 들어가 같이 이야기할 수 있고, 때로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확고한 신념이 생기게 하려고 생각을 통해 시뮬레이션합니다. 반복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하고 타당한 근거가 될 때 결국 확고해지는 것 같아요. 생각을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이미지로 상상해 내거나 그것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머릿속에 그려요. 어떤 것은 그런 과정을 통해 작업이 완성되는 것도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확고함 밑에는 결국 반복한 생각들이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무각형’이라는 단어도 참 재밌었어요.

저도 이런 소통의 공간을 만난 게 참 행운이라 생각해요. 무각형은 보이지 않는 형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편할 것 같아요. 네모, 세모, 동그라미처럼 보이는 형태도 있고, 보이지 않는 형태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관계를 설명하면 이해하기 쉬워요. 관계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끈으로 형태를 그리고 있는데, 사실 가시화되지 않잖아요. 오래전부터 이런 보이지 않는 형태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보이고 정형화된 것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지만 그 밑을 지지하고 있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 많아요. 이런 생각들이 뭉쳐져 우연히 ‘무각’이라 이름 지으면 어떨까 하고 부르게 되었어요. 그래서 무각이란 각이 없는 게 아니고 고정되어 있지 않은 형태라는 뜻입니다. 무각형 작업을 시작으로 무각행, 무각무, 무각섬에 이르기까지 시리즈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어요. 작은 조각 형태에서 만났지만 결국 그 조각이 섬을 이루었는데요, 제겐 개인전에 전시할 섬 작업이 굉장히 의미가 커요. 결국 인간은 자신만의 형태를 짓고 살아가잖아요. 저도 저다운 형태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 안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고요.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일상이 궁금해요.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그리고 작업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지, 이런 거요.

저는 가구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낮에는 건축 현장을 찾거나 디자인 작업을 하고, 공장에서 디자인된 가구를 만들기도 하며 틈틈이 작업도 해요. 10년간 정말 어려운 때가 있었어요. 일을 꼭 해야 했고, 일을 하면서 어떻게 작업을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작업에 몰입하기 워밍업이 꼭 필요했어요. 일을 하면서 작업을 하려면 이 워밍업 시간을 줄여야 했습니다. 작업실에 바로 와서 일을 하기까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작업실 가기 전에 작업할 것을 미리 시뮬레이션했어요. 오늘 해야 할 작업을 미리 계산하고 반복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10년 동안 그렇게 한 것 같아요. 그 시간 덕에 미공개 작업으로 개인전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가구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서 작업과 일의 비중을 조절해 가며 생활하고 있어요. 균형을 맞추는 일은 여전히 숙제네요.


최근 가장 관심 있는 주제나 고민도 궁금해요. 이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본인의 생각을 확장하는 방법도요.

최근 경계성 인격장애에 관심이 생겼어요. 결국 제 관심이나 작업 주제는 사람이 사는 모습이나 형태인 것 같아요. 내 주변 혹은 타인, 타인에 비친 내 모습들. 사람 사는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지 않나 싶어요. 소외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사실 제 아들에게서 시작된 것 같아요. 아들이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고, 그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것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보지 못하던 시선으로 세상을 바로 보게 되었고, 그 아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결국 무각형을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렇게 제 관심의 주제는 제 안, 혹은 그 주변에서 일어나요. 저는 그것을 잘 들여다보고 호기심을 멈추지 않을 뿐이고요. 호기심 어린 제 시선이 결국 작은 것들을 미세하게 들여다보게 하고, 같이 느끼고 나누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의 시선에 닿아 있는 삶의 마주침이 저에겐 너무 소중해요. 그렇게 만난 삶의 조각들을 항상 수집하고 상상하고, 결국 그건 생각을 확장하는 매개체가 되어주니까요.

곧 새로운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소개해 주세요.

9월 4일부터 10일까지 문화비축기지 T1에서 개인전을 해요. 퍼포먼스 공연도 2회 예정되어 있고요. 이번 작품은 그간 만든 무각형 조각들을 섬으로 선보이는데요, 이번 개인전에서는 무각섬이라는 무인도 같은 섬을 하나 선정했어요. 그래서 그 작품을 가까이 보려면 10m의 털실로 된 작품을 밟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 안은 제가 좋아하는 패턴과 형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섬은 가구의 형식을 빌려 네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요. 그리고 각각의 공간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도록 책상이며 테이블, 침대가 하나의 섬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올해 초에 우연히 후배 전시에 갔다가 문화비축기지 T1을 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그래서 바로 19시간 동안 상상과 스케치만으로 기획서를 만들었어요. 전시할 내용과 이미지를 90% 정도 상상했고, 이번 전시를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이번 퍼포먼스 공연과 조형 설치 작업은 관객과 소통하며 다른 방식으로 전시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 김마저에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결국 저는 제가 저답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답다는 게 참 쉽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세상을 살면서 부조리함을 겪고 바라보면서 저답게 대처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러다가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 타협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이런 점을 고민하다가 어느 날 문득 ‘모순’이라는 단어에 천착하게 되었고요. 너무 다른 것이 섞이지 못하고 서로 등을 지고 기대며 형태를 이루고 있었어요. 모순이 되어 이 둘은 절대로 결합될 수 없는데도 말이죠. 세상에 이런 것들이 보이면서 하나씩 단어장을 만들기도 했어요. 이 둘은 어떤 관계로 결합되었는지, 서로 다른 창과 방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 둘을 다 부정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어요. 또 하나 천착하는 생각과 단어는 ‘겹침’이에요. 고정되거나 혹은 정의 내려진 것에 하나의 공간을 설정해 알파의 공간을 만들고 다른 하나에 툭 걸쳐두어요. 저는 이런 상상을 재미있어 하고 그 상상의 근원은 소통으로 이어져요. 그래서 작품에서 플러스 알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작은 구멍을 만들죠. 소통에서 시작한 구멍이 공간이 되는 과정을 바라보고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되는데요, 작품의 그런 모습 가운데 천착해 고민하는 과정이 가장 저다운 모습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