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지하는 일과 그럼으로써 현실을 확장하는 일.
상상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우리에 관한 이야기.
Editor: Oh Yubin
Photography: Shin Kijun
Art: Hwang Joye
Hair: Kim Hwan at NaTsu
Makeup: Baek Hyuna
<DAZED> KOREA, September 2024 Issue
오래도록 수다를 떨었다. 사실 이걸 노렸다. 인터뷰를 가장한 수다. 교집합을 가진 사람이 자꾸 줄어서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웠다. 처음 만난 그는 나보다 훨씬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듯했지만, 단번에 알았다. 오늘 재미있겠구나. 괜히 들뜬 척 가장한 대화가 아닌, 진짜 대화를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질문지를 가득 준비해 갔지만 꼬깃꼬깃 접어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는 용기 내어 말했다. “우리 그냥 얘기해요.”
김시마는 좋아하는 것보단 싫어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대화 내내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그가 싫어하는 것들을 통해 차근차근 그를 이해했다. 먼저, 한국이 싫다고 했다. 이유는 뭐, ‘우리 다 그렇듯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사람들을 보면 모두 공통된 언어가 있고, 그 언어로 서로 이야기하며 잘 사는 것 같은데, 혼자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었다는 말에 괜히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얘기하고 싶진 않았다. 내 얄팍한 경험으로 그를 다 헤아릴 순 없을 것을 직감했기 때문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낙원인 줄 알았던 그곳도 시간이 지나니 똑같았다. 결국 그간 해온 음악을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음악을 삶의 전부로 여기며 살았기에, 음악이 사라진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 마음으로 <Ecology of Sound>라는 마지막 음반을 냈다. ‘음악은 인류가 만들어낸 환상이며,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건 음악이 아닌 소리’라는 문장과 함께. 당시 그는 음악가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일궈내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본 음악에 소외된 사람과 세상을 보며 돌아서겠다 결심했다. 그러곤 세계를 만들어내는 건 어쩌면, 불완전함으로 구성된 소통과 상호작용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동안 잠적한 끝에 미술의 세계에 진입했다. 그의 작업을 보며 음악에서 미술로의 전환이 어감만 달라진 것이라 느꼈다. 마치 한국어에서 영어로 바뀌듯, 같은 이야기를 풍부한 언어로 말함으로써 오히려 세계를 확장한달까. 그는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소통해요!”라는 말이 아주 싫다고 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 그런 건 다 허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사람은 평생 외로운 존재라고, 이에 잘 적응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고. 말과 말이 오간다고 전부 대화가 아닌 것처럼, 완벽히 이해할 순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헤아려지는 그런 마음을 느낀 때가 몇 번이나 있었나. 반대로 나를 헤아려주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었나 문득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최근 김시마는 <프로토 카본>과 <소프트 카본> 전시를 통해 물리적인 실제 세상과 감각되고 인지되는 세계를 구분했다. 그리고 이 두 세계를 이어주는 인터페이스를 설계해 낯익음과 낯섦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는 요즘 고민이 있는지 묻자 “사는 것 자체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대답했지만, 타인을 보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는 모습에서 삶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보았다. 김시마가 꿈꾸는 세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서로의 다름을 인지함으로써 현실을 확장한다. 그 세계에서 불완전함은 온전히 존중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