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bin Oh


FASHION
FEATURE
DIGITAL(WEB/INSTA)


OLD BUT NEW

세월이 묻은 오브젝트들이 알란 레르손 호다코바의 손안에서 대담한 디자인과 유일무이한 실루엣으로 재탄생한다. 그가 미래를 고려하며 나아가는 순간, 현재는 가장 새롭다.

Text: Oh Yubin
Art: Wi Daham
Interview with Ellen Hodakova Larsson
<DAZED> KOREA, March 2025 Issue


호다코바를 소개한다면.


호다코바는 스톡홀름을 기반으로 전개하는 브랜드로, 학교 졸업 후 2021년에 처음 시작했다. 우리는 과거의 오래된 재료를 변형해 럭셔리하게 재탄생시킨다. 기존의 것에 실용적 문화를 부여하고, 잊힌 재료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2024 LVMH Prize 최종 우승을 축하한다. 무엇이 가장 크게 바뀌었는가.

많은 사람이 응원을 해줬다. 인정받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사야 보편적이겠지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 건 중요하다. 그게 크든 작든,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 노력을 알아줄 때, 그때 비로소 성장한다고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수상을 통해 성장을 인정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당신 말을 들으면 왠지 북유럽에 가고 싶어진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지낸 경험이 호다코바라는 브랜드에 개성과 서사를 부여한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

자연에 있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반려견을 데리고 들판에 자주 나가 통화를 하곤 한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부모님이 시골에 있는 할머니의 집을 물려받았다. 말과 여러 가축이 있던 마구간에는 정말 할 일이 많았다. 농사와 관련된 모든 일을 우리가 직접 다 했으니 말이다. 부모님은 모두 행동파다. 잘 모르더라도 겁내지 않고 새로운 일에 과감히 뛰어든다. 늘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방식을 믿던 분들이다. 특히 엄마는 그림을 정말 잘 그리고, 재봉 기술도 뛰어나다. 인테리어 디자인도 아주 잘하고, 기본적으로 모든 것에 능하다. 엄마의 이런 부분에 대해 항상 감사하다. 우리가 그 과정의 일부가 된다는 게 참 좋았다. 나는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하루 다섯 번씩 옷을 갈아입었을 만큼 정말 옷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모든 상황을 위한 의상이 있었을 정도니까. 


회화와 조소,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그러고는 디자이너가 됐다.

졸업한 뒤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웃음) 그러곤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친구가 다니던 스톡홀름 미술학교에 지원했다. 원래 그림 그리는 걸 굉장히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합격하고 나서 막상 내가 조각에 더 많은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인간의 몸에 모든 관심을 쏟고 있었고, 모든 걸 내 몸을 기준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때 건축학 수업도 듣고, 다양한 공간과 소재로 조각 작업도 해보고, 회화도 했는데, 회화에는 특히 너무 큰 압박을 느꼈다. 좋은 화가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도를 했고, 그러다 결국 패션 스쿨에 지원했다. 


호다코바가 생각하는 옷, 패션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를 바탕으로 구축된 브랜드의 미학과 정신은 무엇인가.

내 관심사는 소통이다. 어떻게 오래된 소재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지에 집중한다. 호다코바가 뭔가 다르게 작업하고는 있지만, 그저 창작의 길을 신뢰하는 편이다. 그렇게 나만의 창의력을 따라가면서 스스로에게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주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지만, 그 과정을 통해 창작의 마법 같은 순간을 직접 경험하는 건 정말 흥미롭다. 


앞선 말마따나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이야기는 당신의 어린 시절,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북유럽의 모습처럼 동화스럽지만은 않다. 어떨 땐 그런지하고 펑키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새로운 디자인을 구상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디자인이란 결국 한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개념이나 아이디어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너무 억지로 만들어내려고 하기보다 잘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종종 어떤 것을 볼 때, 단순히 그것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 그치고는 한다. 중요한 건 그다음 단계다. 다시 바라보는 것,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을 더 깊이 받아들이고, 자연스레 호기심을 가지는 것, 그렇게 새롭게 보는 것 말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지퍼가 달린 드레스를 예로 들어보자. 처음엔 그 실루엣만 보고 그저 단순히 반짝이는 드레스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다시 보면 전에 본 적 없는 유형의 드레스임을 깨달을지 모른다. 이런 것이 창의력을 자극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모두가 알고 있는 소재나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사람들이 우리 옷을 통해 시각을 바꾸고 기존에 보던 것을 새롭게 인식했으면 좋겠다. 아, 새로운? 혹은 더 크고 깊은 의식 말이다.


버려진 벨트로 만든 펜슬 스커트, 앤티크 시계로 만든 홀터넥 톱,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단 하나의 브리프케이스로 제작한 오피스 룩, 드레스와 수백 개의 스푼으로 재구성한 드레스까지. 옷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던 특이한 재료로 의상을 만드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까.

그렇다. 이번에는 단추와 지퍼 드레스를 예로 들어보겠다. 그 역사를 되짚어보면, 지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단추로만 여몄다. 그러다 지퍼가 등장하면서 실용성 측면에서 완전히 좋아졌다. 하지만 나는 왠지 그 과정에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낀다. 내가 선택하는 모든 소재도 마찬가지다. 그 소재들은 끝없이 탐구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도 있다. 대화를 시작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약간의 취약함을 드러내도 된다고 믿는다. 이 세상은 끝없는 노력과 성취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그 틈을 조금 열어 그저 진실한 순간을 만들고 싶다.


우리는 많은 제약과 틀 속에서 살아간다. 패션산업도 마찬가지다. 그 사이에서 진실한 순간을 만들고자 하는 건 큰 용기이자 도전일 것이다. 이를 위해 행하는 본인만의 루틴이나 개인적 실천이 있는가.

현재에 집중하고 사물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 다양한 시점과 다양한 층위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것이다. 무언가를 처음 접할 때, 우리는 종종 사물의 첫인상 이상으로 그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는 외부를 둘러보기보다는 내 안에서 영감을 찾고자 하는 편이다. 그러기 위해선 시간을 초월해야 한다. 너무 서두르지 않되,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금증과 상상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을 해석하면서 스스로 관객이 되어 의견을 형성한다.


날이 갈수록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력 앞에서 여전히 장인정신을 추구한다. 더불어 미래세대와 자연을 고려한다. 창작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지만, 데드 스톡을 사용하는 호다코바는 창작과 동시에 기존의 것을 소진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행보다.

창조는 인간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다.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서로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끊임없이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더 창조하고 싶어지면 사물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접근 방식을 택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이런 자기중심적 접근 방식과 더 넓은 공통적 접근 방식을 어떻게 조화롭게 결합할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행동과 존중, 지속 가능한 포용의 접근 방식이 필수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런 긍정적 변화가 이미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고 느낀다.


시즌마다 재활용 소재와 데드 스톡도 조달해야 할 텐데, 이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직 이런 소재를 체계적으로 공급할 시스템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재활용 소재를 분류하는 과정을 효율화하기 위해 AI 모델을 활용해 작업해 왔고, LMVH 멘토십과 이 분야에 자금 지원을 집중하기도 했다. 우리 목표는 재활용 소재를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오래된 코트나 작아진 아동복은 매년 자선단체에 기부되지만 결국 일괄적으로 거대한 뭉치로 압축되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재활용 소재 수거 계획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재활용 소재 딜러들이 제품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있도록 돕는 이유다. 앞으로 디자이너들이 검색하고 주문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카테고리별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도 훌륭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수장으로서 책임감이 큰 사람 같다. 브랜드를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스웨덴에는 ‘라곰lagom’ 이라는 단어가 있다. 충분한 것과 과도한 것의 사이, 딱 ‘적당한’ 상태를 말한다. 정말 좋은 단어다. 이 단어에는 우리가 따르고 있는 삶이 함축되어 있다. 오히려 무대 뒤에서 고생하는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고, 과시하거나 인정받으려 하지 않는 태도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자신의 공을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느끼거나 스스로에게 엄격하기도 하다. 


호다코바가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앞으로도 트렌드에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호기심을 통해 활력을 얻고,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 물론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꾸준히 배우고 즐기며 창작하는 게 우선이다. 어디에나 있는 유행을 만드는 것이 아닌 좀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것이다. 더불어 낭만적이고, 기분 좋고, 약간의 위트가 있는 옷, 편안하고 기쁨을 주는 옷, 그런 옷을 꾸준히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Image : © Hodako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