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에르 페칼레의 파리 패션위크 데뷔 쇼는 인간이고 싶은 인간의 이야기다. 소외의 경험은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으로, 기존 질서에 우아한 작별을 고했다.
Text: Oh Yubin
Art: Kim Seongjae
<DAZED> KOREA, Spring 2024 Issue
파리 쿠튀르 쇼 데뷔를 마친 마티에르 페칼레의 디자이너, 스티븐과 해나를 인터뷰했습니다.
마티에르 페칼레를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우리는 스티븐 라지 바스카란Steven Raj Bhaskaran과 해나 로즈 돌턴Hannah Rose Dalton이다. 마티에르 페칼레는 우리가 디자인하는 파리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로,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비전과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구현한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어땠나.
11년 전 몬트리올에 있는 굉장히 기술적인 패턴 제작 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그 당시 우리는 스스로를 표현하기 두려워했기에,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 다. 어느 날 재봉틀 앞에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금세 깊은 유대감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진정한 자신이 될 용기를 주었다.
영화에서 사랑을 약속하는 장면 중 가장 마음을 울린 대사가 “우리 서로를 구해 주자”인데, 두 사람의 이야기에 문득 그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도 서로가 서로를 살렸다. 우리 삶은 서로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마티에르 페칼레, 그리고 스티븐과 해나는 ‘현상 유지에 대한 거부’라는 공통된 열망을 갖는다. 두 사람이 정말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는데, 그 열망을 갖는 계기도 차이가 있을 것 같다.
해나 어릴 적 사립 여학교에 다녔다. 그 경험은 여성성과 엘리트주의에 대한 나의 시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보호받는 환경에 있었지만, 세상엔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패션계와 미디어의 어두운 이면을 조사하게 되었고, 그것이 나를 깨어나게 했다. 사회의 강요된 ‘완벽함’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스티븐 나는 해나의 경우와 정반대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정글처럼 잔인한 세상에 내던져졌다. 나의 문화적 배경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을 금지했고, 당시 모르몬교의 규율을 어긴다는 건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괴롭힘과 트라우마가 심해지면서, 오히려 더는 잃을 게 없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모든 걸 내려놓고 원하는 대로 살았다. 자멸의 길이긴 해도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그러다 해나를 만나면서 비로소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해나처럼 나도 여학교에 다녔고, 교복을 입었다. 그때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자의 모습을 전혀 의심 없이 수용했다. 스티븐이 그 틀을 벗어나게 된 첫 순간이 궁금하다. 그저 알고 느끼는 것과 변화하는 것은 차이가 정말 크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11학년까지 12년 넘게 교복을 입었다. 그래서 내 스타일을 발전시키고 패션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솔직히 그 시절엔 교복이 그렇게 억압적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나는 내성적이라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 때 교복을 벗고 내가 고른 옷을 입기 시작할 무렵에도 ‘여성스러움’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다. 적절하고 수용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그 기준을 깨는 게 정말 어려웠다. 열아홉 살 때 머리를 밀었는데, 그것이 나 자신을 옭아매던 규칙과 사회적 규범에 작별을 고한 첫걸음이었다. 삭발은 곧 자유를 향한 시작이었다.
삭발부터 깎은 눈썹, 렌즈로 엄청 커진 동공까지. 규칙, 규범과의 작별은 포스트휴먼의 모습을 강조하는 메이크업으로 진화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비전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실험 욕구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형태를 더 밀어붙이고, 그 경계를 넘어서고 싶었다.
마티에르 페칼레, 직역하면 ‘똥’ 혹은 ‘배설물’이다. 이름마저 가히 실험적이다.
처음 친구가 되었을 때, 우리 둘은 패션업계에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정한 이름이다. 이런 이름이라면 사람들이 옷을 구매할 때 라벨에 적힌 이름이 아닌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구매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주류 패션계의 기업 문화에서 우리의 미학과 정신을 고수하겠다는 각오도 담겨 있다.
거리에서 찍힌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제삼자가 종종 같이 등장한다. 그 표정까지 담긴 이미지는 마치 현대미술 작품 같다.
그 이미지들은 우리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세상에 ‘들어맞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현실이기도 하다. 파리로 이사했을 때, 패션으로 가득한 자유로운 곳에서 살 수 있을 거라는 큰 비전을 품고 왔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진정한 자아를 찾는 걸 두려워한다. 아름다움, 럭셔리 그리고 용인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다. 우리가 얼마나 눈에 띄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직접 경험했다. 그래서 우리 작업에는 일상의 고정관념 속에서 우리가 겪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포함된다.
첫 컬렉션의 테마, ‘The Other’와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 소외되는 경험과 소통할 수 없다는 느낌 속에서 살아가며 인간성을 초월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이번 컬렉션을 ‘외계인과의 연결’이라고도 표현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 회색이나 초록색 외계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가족, 학교 그리고 어디에서든 항상 소외된 존재라는 의미에서의 외계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통해 순응하지 않더라도 소속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느꼈기에 이를 담고 싶었다.
“더 시끄럽게 사는 것에 대한 찬가. 사회가 기대하는 것 너머로 [자신을] 보는 거울 같은 역할.” 쇼 노트 속 문장이 인상 깊다. 그 너머 존재하는 거울을 마주하기 위해 수행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작업을 통해 세상과 사회 안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관점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건 일종의 개인적 훈련이기도 하다. 우리같은 존재를 원하지 않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이에 대처하고 극복하기 위한 방식이랄까. 하루하루가 우리의 자유를 점점 더 두려움 없이 표현하기 위한 여정이다.
소속되고 싶지만, 그 과정에서 입는 상처도 크다. 그럼에도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소속감’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 내면적으로 우리는 모두 이해받고 싶고, 나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하고 싶어 한다. 자기 성찰이 깊을수록 외로움도 커지니까. 우리의 관계는 서로에게 그런 소속감을 주었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그 무한한 사랑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하도록 돕고 싶다.
공감한다. 하지만 어딘가에 속해 있기에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고, 그래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집단 속에서 존재를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개인은 어떤 의식을 가지고 집단을 형성하고 살아야 할까.
내가 나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면, 그 집단과 소속감이 내 자유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취약함을 나눌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게 아닐까. 그래야 진정한 연결 고리가 생기고, 그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인간다움을 논하면서도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포스트 휴먼 미학을 사랑한다.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칭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으로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세상의 모든 단어와 현상, 존재들은 간단히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좋다.
모든 것은 단지 ‘단어’일 뿐이다. 그 안에 의미와 해석을 덧붙이는 건 각자의 몫이다. 각 단어의 의미는 고정돼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연해지고 왜곡될 수 있다. 인류가 진화하기 위해선 세상에 존재하는 개념을 계속해서 재정의해야 한다고 믿는다. 성장과 진화의 개념은 끝이 없는데, 왜 의미와 단어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
그럼에도 두 사람이 내리는 정의가 궁금하다. ‘인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랑. 모든 것은 사랑에 의해 형성된다. 삶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육체는 그 사랑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우리는 그 그릇의 형태를 가지고 놀지만, 그 안의 본질은 언제나 사랑과 인간 모두가 공유하는 감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업계가 아름다움과 열망적 소비의 장소라는 생각에 반대한다고. 그럼에도 패션은 상업성을 포기하기 어렵다. 즉 순수한 예술로만 남긴 어렵다는 뜻이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은데, 특히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있다면.
‘표현의 자유’가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브랜드든, 개인적인 삶이든 이 가치를 중심으로 항상 움직이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지금과 달랐다.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이 정말 두려웠다. 지금도 그 지난날을 기억하기에 우리의 목표가 언제나 소외된 이들의 커뮤니티를 돕고, 작업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자극하는 것이라는 점은 변함없을 거다. 처음엔 아무런 권력이나 지원도 없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많은 게 달라졌다. 이제 꿈꿔 온 것들을 펼치고 싶다.
이번 데뷔 쇼 이전에도 페칼 매터Fecal Matter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행보를 이어갔다. 이번 쇼 의상에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이 녹아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 그간의 감정적 폭발이 담겨 있다. 이는 시각적 요소와 비율, 실루엣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크로스 심 디테일로 종교적 배경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표현했다. 피날레 작품인 랩 마이크로 핸드 플리츠 시폰 드레스는 ‘앙주 아르크Ange Arc’로, 프랑스 쿠튀르 웨딩드레스의 원형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가슴에서 날개가 솟아오른 형태로 이 순간을 맞이하기까지의 우리를 지켜준 모든 수호천사를 상징하고자 했다.
릭 오웬스와 친구이자 멘토라고 들었다. 프런트 로에서 쇼를 보던 릭 오웬스와 미셸 라미의 눈에 어린 애정과 감동을 기억한다.
릭이 우리에게 2018년 핼러윈에 파리에서 저녁 식사를 하자고 메일을 보냈다. 우리에 대한 기사를 읽은 거다. 그렇게 만남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그간의 작업을 거의 다 보여줬고, 그 이후로 아름다운 우정이 계속되고 있다. 릭과 미셸을 정말 사랑한다. 그들은 우리의 창의성과 메시지를 믿고 응원해 준다. 우리가 선택한 가족이고, 그 관계는 패션을 넘어서 있다.
<데이즈드>는 쇼 현장의 생생한 감동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둘을 괴짜 인플루언서로 여기는 세상 앞에 보란 듯이 내놓은 완성도 높은 디자인과 폭발적이고도 아름다운 실루엣, 무엇보다 그간 두 사람이 혐오와 차별 앞에 맞서 걸어온 길과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다. 그 박수갈채 속에서 두 사람이 마주할 세상이 이전보다는 덜 외롭고, 덜 두려워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패션위크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꿈꾸던 순간이 온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 선보이고 싶은 게 많을 것 같다.
우리가 수년간 마음속에 그려온 세계관과 아름다움을 드디어 세상에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대화’를 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누구이며,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함께 이야기하는 거다.
Images: © Matièrés Fecales/Iker Aldama